꼬박 이틀째 비가 오는 창밖을 소파에 누워 바라보다가 [[이재윤|재윤]]에게 "넌 비 올 때 뭐해?" 라고 묻고 싶은 기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. 내가 재윤을 얼마나 욕망하고 있는지 재윤이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? 나는 재윤을 캐릭터로밖에 볼 수 없는데 (입체적으로 튀어나올 만큼 충분한 정보가 없고, 열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이어스에 빠져 있고, 아직 그를 맑기도 탁하기도 한 인간으로 볼 만한 시간의 지점을 지나지 못했고, 그와의 실제 혹은 환상 속 거리가 멀거나 가깝다기보다 지나치게 멀고 가까움 사이를 요동치므로) 재윤은 언제 내 안에서 그저 그런 실제의 인간이 될까? 이런 기분에 빠지게 된 것은 요 며칠은 재윤에 대해 별로 생각하거나 재윤을 욕망하거나 재윤과의 이런저런 상황을 상상하며 자위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 즈음, 오늘 저녁 인스타에 올린 생존 신고 글에 재윤이 좋아요를 눌렀기 때문이다. 그리고 나서 재윤의 프로필 사진이 내가 누워있는 바로 이 노란 소파에 재윤이 누워있을 때 찍힌 사진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. 나는 얼마든지 더 욕망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지만 재윤의 프로필 사진이 찍힌 세팅을 내가 제공한 데에 만족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검소하고 금욕적인 마무리도 한 번 지어보고. 이 사진은 아마도 여행이 폭우로 취소되고 [[29.5]]가 우리집에 모인 2022년 8월 11일에 찍힌 사진인 듯 한데 내가 찍은 사진은 아닌 것 같다. 일단 그날의 구글 포토에 없고, 특유의 그레인이 갤럭시보다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같다. 사실 이 날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두 가지 순간을 기록하고자 했는데 하나는 재윤이 소파에서 이불과 바디필로우에 감싸여 머리만 빼꼼 내놓고 고치를 틀고 있는 장면이고, 하나는 내 침대에 [[박지원|P]]가 바로 누워있고, [[김유진|Y]]가 거꾸로 누워있고, 그 앞에 바닥에 재윤이 앉아 젓가락 들고 뭔가를 먹고 있는 장면이다. 아마 스시 배달을 시켰을 때 같다. 어쨌든 나는 인물이 들어있는 장면은 이 두 순간밖에 찍지 않았는데 두 순간 다 재윤이 들어있다. 나는 2022년 9월 1일에 [[박지원|P]], 재윤과 셋이 앤트러사이트에 갔을 때에도 재윤이 바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찍었다. 지금 그 사진을 다시 보니 정말 재윤의 몸이 궁금하다. 알몸으로 모델을 세우고 싶다. 욕망에 찬 선을 그을 자신이 있는데. 동굴이나 계곡에서 크로키를 하고, 비가 와도 좋겠다. 뒷모습 바로 다음 사진은 재윤의 인스타그램 글 캡처인데,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포용과 감사를 이야기하는 글이고, "역사하실" 에 내가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았다. 작년 여름에(서부터) 나는 분명히 재윤을 욕망했군. 어지럽다. 재윤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어떻게 욕망하는지 맞춰보라고 한다면, 맞추는 과정은 불안하고 즐거울 수 있지만 답을 알고 싶지는 않다. 욕망하든 욕망하지 않든 일상적 표면에서 달라지는 건 없고, 욕망해도 큰 문제다. 내가 그 욕망을 잊거나 모른척하거나 외면할 수 없을 테니까. 그 욕망이 내 욕망에 아주 예민하게 반영될 테고. 내 욕망의 자극적인 먹이가 될 테고. 현실을 무너뜨리고 싶을 테고. 만약에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두 욕망을 해소한다면 나는 곧 흥미를 잃을 테고. 욕망하지 않는다면 내 욕망의 소강에 도움은 좀 되겠다. 내 욕망의 먹이가 없으니까 나는 몇 번 더 불을 놓아보다가 땔감이 없으면 물러나거나 혹은 새로운 땔감과 마주칠 것이다.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땔감 (혹은 딸감) 과 마주칠 때까지 내 욕망을 점점 더 적은 빈도로, 그래도 꽤 오랫동안, 즐길 것이다. 예를 들면 내가 점점 더 적은 빈도로, 그러나 아직까지도, [[Richard Greenfield|R]]을 딸감으로 사용하는 것처럼.